좋은 사람과의 이별은 항상 슬픕니다. 그리고 항상 빨리 이별의 시기가 찾아옵니다. 김충규 시인과의 이별도 그렇습니다. 이별이 아쉬워소매를 붙들어맨다는 몌별이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왜 세상은 좋은 사람에게 긴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 걸까요. 누구에게나 삶은 반짝이는 경이에 가득차면서도 고독과 슬픔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그 고독과 슬픔 속에서 어떤 것으로 위로받는가는 각자 다릅니다. 저같은 경우는 타인의 글로 헛헛한 마음을 채워넣습니다.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커피와 책을 찾는 손길이 바빠집니다.시집이 나온지도 시인이 세상을 떠난지도 오래지만 마치 어딘가에서 시인은 시를 쓰고있을것 같습니다.더 깊은 잠을 자도 돼요 당신
나는 묘비명을 남기지 않을 것이다 라고 했던 시인. 죽음이란 게 어쩌면 그 사람의 일생에서 가장 화려한 꽃이 아닐까/ 그 꽃을 피우기 위하여 일생 동안 피의 거름을 생산한 게 아닐까 (「안개 속의 장례」) 하고 물었던 시인. 평소 몸이 약해 늘 고통과 죽음에 대해 질문했던 시인 김충규의 유고 시집 라일락과 고래와 내 사람 이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일년 만에 발간되었다. 이제 세상에 없는 시인의 시 곳곳에서 발견되는 죽음과 그 이후의 이야기는 읽는 이들의 마음을 더욱 건드린다.
그가 남긴 마지막 시들이 유독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이것이 유고시집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음성을 다시 들을 수 없고, 그의 온기를 느낄 수 없기 때문만도 아니다. 아마도 그것은, 시인이 시를 통해 도달하려 했던 존재의 멀고도 그리운 근원, 그 따듯함과 아프도록 분리되어 있는 우리 자신을, 그리고 고통을 주는 세계를 껴안는 방식을 슬며시 돌아보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떠나간 저세상은 고요할지라도, 여긴 아직 시인을 애도하는 이들로 수런거린다. 이병률 · 이승희 · 이재훈 · 조동범. 이들은 김충규 시인의 유고 시집과 함께 기억의 결을 더듬어 시인을 호명한다. 이들의 추억, 시인이 남긴 마지막 시들을 찬찬히 읽고 나면 마음 한 켠에 아릿한, 그러나 마냥 쓸쓸하지는 않은 미소가 입가에 걸린다.
시인의 말을 대신하며
라일락과 고래와 내 사람
맨홀이란 제목
잠이 참 많은 당신이지
허공의 만찬
말할 수 없이 지겨우니까요
수렁
검은 눈물을 흘리는 물새
불행
유리창과 바람과 사람
저녁에서 아침 사이에
(까마귀 우는 환청이 들렸는데)
밀림
안개, 풍성한 여인
우리는 누구인가요?
하필 물새여서
오늘은 휴일
허공의 미궁
지평선에 이르기도 전에
들불
나비와 고양이는 서로 만나지 못했다
그렇지만 고래는 울지 않았다고 한다
뼛속에서 울렁울렁
가는 것이다
어느 해변에 가야
허공의 범람
웃는 새
죽은 조상을 등에 업은 사내
밤이 되면
저물 무렵의 중얼거림
당신, 참 이상한 사람
오늘 저녁 메뉴
내일이 오지 말기를, 중얼거리는 밤이다
먹구름을 위한
뭐였나, 서로에게 우리는
뱀과의 입맞춤
얼른 가자 숲으로……
물결의 고통
당신의 귀울림과 고래의 관계
음악은 흐릅니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나지 않는군요
안개 속의 장례
꽃의 웃음에 대한 비밀
나비 요리
산 그림자
밀교(密敎)
페루 청년의 구지가(龜旨歌)
모래 냄새를 맡는 밤
벼랑의 일각수
기억의 퇴적층
기러기는 아프리카 쪽으로
지금 보스턴에도 보슬비가 올까
참으로 오랫동안
허공을 향해 중얼중얼
앓는 눈동자를 꾹 누르면
낙타의 뼈
구름의 감정
미풍, 또한 다 저물고
악몽
포로수용소
추모 발문
이병률·이승희·이재훈·조동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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