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예술과 삶. 왜?. 비가 올 것만 같은 저녁이다. 점심 무렵만 해도 해가 좋았던 것을 기억한다. 날씨란 이렇게 종잡을 수 없는 것인가보다. 아들은 날씨를 예측하는 슈퍼 컴퓨터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많은 수치를 입력하고 계산을 해서 결과를 내놓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날씨를 알게 된다고도 했다. 그때 내가 반문했다. 결국은 날씨가 틀릴 때도 있는 걸로 봐서는 정밀하게 똑똑하다는 슈퍼 컴퓨터도 실수를 하는구나. 그렇지? 완벽한 것은 세상에 없는가보다. 그때 아들이 말했다. 엄마는 세상에 완벽한 게 있다고 생각하나요? 완벽한 존재는 없지만 완벽을 위해 앞으로만 달려가는 존재는 있지 않을까. 혹시 어느 비좁은 구석에서는 인생을 아까워하지 않는 이들이 분명 있을 것만 같다. 사실은 말이다. 늘 그랬지만 완벽이란 게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그 자체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곤 한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를 읽는다.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타히티의 풍광이 눈에 그려질 듯하다. 뜨거운 태양, 벌거벗은 건강한 구리빛의 사람들. 그들이 만들어내는 맑은 웃음. 짙푸른 커다란 야자나무의 잎사귀가 바로 옆에서 그늘은 만들어내면, 책 속에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가 그 그늘 어디쯤에서 바람을 맞으며 담배를 피우고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는 나한테 관심 끄쇼! 라고 쏘아붙일 것만 같다. 이 사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는 평범함을 너무나도 쉽게 버린 사람이다. 포기가 아니라 버렸다고 해야 더 어울릴 듯하다. 증권 중개인의 삶, 아내와 자식을 둔 평범한 가장이라는 보편적인 삶을 그의 표현대로 그저 ‘집어치우고’ 자신의 영혼이 이끄는 길을 새롭게 선택하는 인물이다. 아무도, 정말이지 그 누구도 그를 말리지 못했다. 어찌보면 그 스스로 원했다기보다는 그의 예술성이 무심하게도 한 사람의 인간성을 끝간데 없이 끌어당겼으며 그는 그저 끌려다녔던 것은 아니었을까.그는 신의 부름처럼 자신을 끌어당기는 거대한 힘에 의해 그렇게 그림을 그리는 삶을 선택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새로운 선택은 예술계에서도,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조차도 인정받지 못한다. 책을 읽다보면 때론 불운해 보이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거대한 성자처럼 보이는 순간이 찾아온다. 어느 순간에서도 당당하게 굴하지 않았던 스트릭랜드 그만의 배짱? 자신감? 자신만의 세계에서 혼자 즐기며 자랑스러워했을 법한 그 거칠기만 한 당당함이 불편해보이기 보다는 부러워보였다면 이상한 것일까. 가끔은 당대에는 외면 받았으나 후대에 이르러 유명해지는 예술가들을 만나는 것처럼 이 막되고 막무가내의 붉은 수염의 사내 역시 다시 새로운 조명을 받게 된다. 사람들은 타히티 어느 외진 곳에서 원주민 아내와 마지막을 보낸 이 기이한 예술가의 이야기를 입에 오르내리며 그를 불러 소환하고 그렇게 어느 불행했을 화가를 기억하는 것이다. 책 속에 남자 스트릭랜드는 화가 고갱을 생각하며 구상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 고갱은 타히티 섬에 머물며 그림을 그렸고 그곳에서 질병으로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사랑보다, 사랑으로 가슴을 아파하는 여인보다, 재물 혹은 그 어떤 명예보다 가장 최우선 순위에 두려했던 그의 예술적 감흥(예술성)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가 예술가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존귀함을 담아 올려다보고자 하는 것은 예술 작품에 대한 감탄과 함께 그들의 예술적인 삶에 대한 경외심이 작용해서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고갱을 모델로 삼았든 아니든간에 달과 6펜스에 등장하는 괴짜 화가 스트릭랜드는 예술가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꾸고 싶은 그들만의 완벽한 자유로운 삶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말이다. 세간의 시선으로 바로 보는 그 삶이란 때론 위협적이면서도 동시에 불온하기까지 하다. 그런 까닭에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비난을 받기도 하고, 멸시와 조롱을 받아내야 하는 인내심을 시험받기도 한다. 그런데 그들은 정말 희한하게도 그 모든 것을 견디며 이겨내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게 먼 시간 저편에서 강건하게 우뚝 서 있다. 딴은 말이다. 우리는 예술혼이 뜨겁게 살아있는 삶은 건강하지 못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들의 삶이 비범해서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그런 예술가들의 삶을 때론 경외심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평범하지 않는 삶에 대한 아려한 열망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때문에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도 가끔 그런 말을 하더란 말이다. ‘나는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어요’. ‘나에게도 예술적인 감흥이 있거든요.’ ‘예술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이 내게도 있거든요.’그렇지만 그들의 짧은 이야기들은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누구나 예술을 보고, 느끼며,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은 있기 마련이니까. 이제 달과 6펜스를 읽고 난후의 지극히 사소한 넋두리를 적는다. 그저 그런 넋두리다. 모든 예술가들이 이런 식의 삶을 추구한다면 인생은 지금보다 더 많이 드라마틱해지려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아니다. 굳이 예술가들의 삶을 따라가지 않더라도 모든 인생은 그만큼의 가치와 무게로 한없이 흔들린다는 것을 안다. 마지막 순간까지 흔들리는 존재는 그들이나 보통의 삶을 선택한 우리나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하며, 싸우며, 서로 미워하고 증오하며, 만났다가는 헤어지고, 돌아섰다가도 다시 그리워하고, 아쉬워하며, 죽음과 대면하는 순간도.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 위로 스미는 슬픔과 기쁨, 분노와 좌절, 절망. 수줍음이 불러오는 크고 작은 다양한 전율은 모두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저 이렇게 한순간 어느 작가의 이야기에 몰입하면서 말 그대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으로 호사스러운 위로를 받으면 되는 일이다. 그거면 되는 것이다.
화가 폴 고갱의 삶의 단편들을 소설로 옮긴 강렬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 예술에 사로잡힌 한 영혼의 악마적 개성과 예술 편력이 한 글자마다 거칠게 때로는 타히티의 태양볕처럼 열정적으로 칠해져 있다. 한 화가의 모습을 그려내는 동시에 원시에의 갈망과 현대 사회의 병폐적인 모순에 대한 반항적 요소가 고루 섞여 들어감으로써 위대한 예술의 서막을 알린다는 이 환상적인 발상은 영미문학 걸작 중의 한 작품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드는 데 모자람이 없는 근거이기도 하다.
1. 달과 6펜스
2. 작품 해설 / 송무
3. 작가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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