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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정사회


우리에게 프랑스의 루이14세는 그의 궁정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그의 나라까지도 무소불위로 지배하는 인물로서, 자신의 뜻에 따라 모든 사람의 운명·지위·생계·흥망성쇠를 좌지우지 하는 존재로 각인되어있다. 그를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 「왕의 춤(Le Roi danse)」 또는 「아이언 마스크(The Man in the Iron Mask)」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가 루이14세를 ‘무소불위의 절대군주’로 생각한다는 점에서는 대체적으로 이견이 없을 것이다. 엘리아스의 초기작 『궁정사회』는 이러한 상식의 틀을 깨는 것에서 시작한다. 루이 14세는, 당시 귀족과 제3계급(시민)간의 갈등과 반목을 이용하는 군주로서, 카리스마도 없고 지능도 낮았으며, 심지어는 귀족들 간의 갈등이 없으면 존재의 이유조차 불분명한 인간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루이 14세는 그들을 적절히 통제하기 위해선 궁정 내에서 서열에 따른 깍듯한 예법과 예절, 서로간의 거리두기 등이 필요하였다. 당시 귀족들은 중세시대로부터 이어지던 지주로서 존재하였다. 그러나 귀족들은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적 요소로 인해 경제적인 위기를 겪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기병중심의 기사귀족으로부터 보병중심의 상비군체제로의 변화로 군사적인 위기를 겪게 된다. 이러한 경제적·사회적 변화와, 전통적인 풍습인 ‘noblesse oblige(서열에 걸맞은 과시의무)’, 경제적 활동을 할 수 없는 신분적인 제약은, 귀족들로 하여금 살아남기 위해 왕에게 의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또한 이 당시 정기적인 세금 등을 통해 왕의 소유가 늘어나면서 전문가계층이 생겨난다. 제3계급, 즉 시민계급은 대학교육과 법률에 관한 지식을 통해 고위직에 오를 수 있었고, 관료계급을 형성한다. 당시의 시민계급은 귀족들에게 반발할 수 있을 만큼 힘을 키웠지만, 군사력이 없었다. 반면 귀족들은 시민계급에게 위협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아직 강하고 전투에 능하지만, 영지에서 들어오는 수입의 감소로 경제력이 없었다. 루이 14세는 이러한 사회적 차이와 갈등을 유지하는데 주력했다. 화폐유통이 증가하고 자본주의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시민계급의 힘이 상대적으로 강해지자, 왕은 귀족 편에 힘을 실어준다. 마찬가지로 왕이 귀족들을 부양하여 궁정귀족의 힘이 다시 강해질 때면, 이번에는 시민계급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카리스마 형’ 지배자는 위기관리능력을 활용함으로서, 그의 개인적인 권력, 우월감 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위기상황의 극복이야말로 카리스마가 발휘되는 순간이기에, 이들에게는 늘 새로운 예측 불가능한 투입의 위험이 요구된다. 그러나 루이14세가 집권했을 때는 중앙 집중 권력의 토대가 마련되었고, 왕위계승을 둘러싼 불협화음도 해결되었으며 국경을 둘러싼 분쟁도 종식되던 시기이다. 따라서 그의 지배과제는 정복이나 새로운 체제의 창출이라기 보단, 기껏해야 기존 지배조직의 구축을 안정시키고 공고히 하는 것이었다. 결국 안정적인 권력수단을 지속하는 것 정도를 추구했던 루이14세는, 대립과 긴장이라는 질투를 이용하여 어느 정도 자신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때 왕은 사람들 간의 관계를 적당히 조절하면서 이 긴장에 개입하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왕의 입장에서 봤을 때 무엇보다도 그러한 조절과 안정, 감시가 수월한 장치가 바로 궁정예법인 셈이다. 물론 루이14세는 특정한 집단의 특권을 상승시키거나 줄이기에 충분한 권력이 있었으므로, 굳이 궁정예법을 거치지 않고서라도 모든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그의 관찰영역 안에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최고위 지배층, 왕비나 황태자들조차 궁정예법에 얽매이게 되었다.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서열, 특권 및 이권을 위한 경쟁자로서 얽매였기에, 상호간에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개혁을 시행할 수도 없었다. 그 결과 조직체는 경직되고, 궁정예법은 단지 ‘예법을 위한 예법’으로서 허공을 맴돌게 된다.약간의 일탈마저도 서로에 의해 강제당하는 형태는, 마치 자신이 유리한 위치를 잃거나 놓칠까봐 위치를 바꾸지 않는 권투에서의 클린치(교착) 상태와도 유사해 보인다. 그러나 스포츠에서는 그 상태를 떼어 놓을 심판이 있지만 여기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모든 개혁을 위한 상류층의 시도는 무산되었고, 결국 낡은 지배조직의 법률적·제도적 틀을 붕괴시키기 위해 폭력을 동원한 혁명이 발생한다. 엘리아스는, 파슨스의 원자론적 인간(행위 이론) 내지 맑스의 집단으로서의 사회학을 넘어서, 서로 의존하는 결합된 형태의 다수의 개인들로부터 출발한다. 집단들의 의존형태 안에서 개인들의 의식은 결정되어 왔으며, 그러한 개인들이 집단간의 결합형태를 결정지었다는 것이다. 17, 18세기의 궁정에서의 다양한 결합태를 발견함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의식과 실존을 사회와의 결합태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아울러 당시 궁정인들이 자기 통제를 내면화하는 모습에서, 루이14세의 궁정과 근대사회가 별반 다를 바가 없음을, 궁정인과 근대인의 유사성이 오버랩 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앙시앵 레짐의 궁정은 우리가 지금까지 몰두해 왔던 사회학 연구의 세부적 대상인 인간이 형성한 봉건사회나 대도시 같은 사회구성체에 관한 어떠한 연구보다도 많은 문제를 사회학자들에게 제기한다. 그런 궁정 에서는 수백 아니 종종 수천 명의 사람들이, 나라를 무소불위로 지배하고 자신의 뜻에 따라 모든 사람의 운명 · 지위 · 생계 · 흥망성쇠를 상당한 정도로 그리고 일정한 한계 내에서 좌우한다고 믿어왔던 왕을 섬기며 보좌하고 그와 친교를 맺어왔다.

물론 이때 그 봉사자와 국외자는 쌍방간에 행사했던 특유한 억압기제를 통하여 한 장소에 얽매인 사람들이었다. 어느 정도 확고한 서열과 깍듯한 예법이 그들을 결속하였다. 그러한 결합태 속에서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내거나 무엇을 관철하려는 필요성은 그들 모두에게 오로지 하나의 특유한 각인, 즉 궁정인의 특징을 부여한다.

그러한 결합태를 핵심축으로 형성할 수 있었던 사회영역의 구조는 무엇이었는가. 권력기회의 분배, 사회적인 욕구, 종속관계는 이 사회영역 안에 있는 사람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이 결합태, 즉 궁정과 궁정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데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궁정사회의 구조로부터, 궁정사회 속에서 출세하거나 그렇게 되기를 원했던 사람들에게 어떠한 요구가 제기되었는가. 대략 말하자면 그것들이 앙시앵 레짐의 궁정과 궁정사회라는 사회구성체가 사회학자들에게 던지는 몇 가지 질문이다.


결합태 : 궁정사회를 움직이는 매커니즘 - 박여성

1. 사회학과 역사학
2. 문제제기를 위한 일러두기
3. 사회구조의 지표로서의 주거구조
4. 궁정과 귀족의 결탁
5. 궁정예법과 의식 : 사회적인 권력구조의 기능으로서 인간의 행동과 성향
6. 궁정예법과 특권기회를 통한 왕위 계승
7. 사회 전체의 권력을 누적하는 기능체인 프랑스 궁정사회의 형성과 발전
8. 궁정화과정에서 배태된 귀족적 낭만주의의 사회적 기원
9. 혁명의 사회적 기원

부록 1. 구조적 갈등이 없는 국가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견해에 대하여
부록 2. 궁정- 귀족주의 경제윤리의 이해 : 궁정귀족사회 대규모 가계의 집사장의 지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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