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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위안


소크라테스는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관습이나 신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 반대했다. 기존 관습이라는 것은 어떤 타당한 이유 없이 자격이 제대로 있지도 않은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추종하거나 다수가 동의한다고 해도 그것이 유요하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다. 오로지 그렇게 결론을 내리기까지 그들의 논리를 곰곰이 따져봐서 논리적 정합성이 있어야 그것이 유효한 것이다. 따라서 모든 명제에 의문을 제기하고 회의적인 시각을 갖는 것이 진리를 추종하는 자의 바른 자세라는 것이다. 그러려면 늘 이성의 명령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철학의 부분적 요지다.반면에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회의적인 시각을 갖는 것은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다. 아마 사회생활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세상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확실한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하는 고로 존재한다는 것도 누가 알겠는가? 나비가 꿈에서 인간인 나를 꿈꾸고 있는지 말이다. 어쩌면 인간은 매트릭스에 존재하는 에너지원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되면, 우리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독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모든 버섯을 먹어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정재승 교수는 바람직한 생각과 행동지침을 제시하는데 그건 바로 80%의 답습과 20%의 탐색이다. 대부분의 일상에서는 관습과 전통을 따라 한다. 남들이 하는 것과 예전부터 하던 전통에는 나름 이유가 있으니까. 그렇지만 20%의 일상,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는 탐색이 필요하다. 탐색이 바로 문제를 제기하고 논리적으로 따져보는 일이다.다음으로 등장하는 에피쿠로스는 쾌락주의 철학의 시조쯤 될 것 같은데, 그렇다고 현대적 의미의 물질이나 육체적 욕망만을 쫓는 철학자는 아니다. 오히려 금욕주의에 가깝다. 진정한 행복은 자유와 우정 같은 정신적 쾌락에 달려있으며 육체의 욕망이나 물질의 추구는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는 거짓 환상에 불과하다는 거다. 돈, 큰 집, 빠른 차가 없이도 인간의 행복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우정과 자유, 마음의 평안이 없다면 행복은커녕 고통의 수렁으로 빠져들게 된다는 것이 에피쿠로스의 철학적 견해다.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이라는 게 있어서 어떤 재화로 느끼는 만족감 즉, 행복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아무리 그 양이 증가한다고 하더라도 늘어나지 않게 된다. 에피쿠로스의 철학은 이미 수천 년 전에 그걸 간파했다. 최소한의 물질은 필요하지만, 그 이상의 부는 인간의 행복에 유의미한 효용을 갖지 못한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인류를 발전시킨 원동력은 일정 수준의 효용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욕심쟁이들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모든 사람이 최소한의 생존 차원의 물질에 만족하고 그 이상을 욕망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인간은 지금도 과일을 따먹으며, 힘센 동물에게 쫓겨 동굴에 모여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의 정신적 쾌락조차 그것을 가능하게 한 밑바탕에는 물질에 대한 욕망에 일정 부분 신세를 지고 있다.몽테뉴는 현대 자기 계발서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기대 수준이 행복을 결정한다는 논리와 비슷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일면, 맞는 말이고 실제로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일단 내게 그 상황이 닥치면 그런 고상한 철학적 견해를 끝까지 붙들 여유가 없어질 거라고 본다. 세상의 모든 일과 인간의 모든 행동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어떤 일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분노에 휘둘리고 고통을 느끼게 되는 것이란다. 배우자가 나를 노예 취급하거나 무시한다면, 화가 나고 반기를 들겠지만, 그건 그가 나에게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거다. 인간의 행동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은 없다,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면 마음의 평정이 찾아오고 우리는 정신적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의 마음이 이성적으로 조절할 수 없을진데, 과연 감정이 이성에게 자리를 내줄 수 있을까? 오랫동안 명상과 묵언으로 수행한 수도자가 아니면 어렵지 않을까.이제 쇼펜하우어의 차례다. 진화심리학이 진화 관련한 학문 중에서도 가장 최근에 연구되고 있는 분야로 알고 있었다. 진화론의 아버지 격인 다윈도 19세기 중반이 돼서야 인류의 진화에 대한 명저인 <종의 기원>을 썼는데, 그보다 앞선 철학자인 쇼펜하우어는 현대 진화심리학의 인간에 대한 해석을 조금은 다른 형식과 사례를 들어 이미 설명했다는 게 자못 놀랍다. 진화론은 모든 욕망의 원동력은 생존과 번식을 위해 본능으로 자리 잡은 것이라고 말한다. 쇼펜하우어는 생존과 번식을 생에 대한 의지 라는 말로 설명했고, 나머지 논리는 거의 모든 부분에서 맥을 같이 한다. 특히, 사랑이라는 것의 본질은 인간을 고상한 존재로 봤을 경우에는 뭔가 숭고한 가치인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생존과 번식을 위해 잠깐 동안 눈이 멀도록 하는 유전자의 명령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는 말이다.이성적으로 본다면, 서로 그렇게 다른 존재인 두 이성 간에 열의를 불태우며 사랑을 나눌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로 인한 이후의 괴로움은 실로 대단한 것이다. 인간이 평생을 고통에 시달릴 수 있는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여성을 향한 열정을 불태우는 이유는 바로 생에 대한 의지, 이성을 훨씬 능가하는 종의 욕구에 복무하기 위해서라는 논리다. 쇼펜하우어는 우리가 아무와 사랑에 빠지지 않는 이유를 자신이 가진 형질과 반대되는 이성을 선택해야 보다 우위에 있는 유전자를 후대에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그런 이성에 사랑을 느낀다고 했다. 그런데, 실제로 보면 대부분의 남성은 모두 동일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이성에 대한 유사한 선호도를 갖는다. 키가 아주 작은 남성이라도 너무 큰 여성보다는 적당히 큰 여성을 선호하는 것은 보통 키를 가진 남성과 동일하다. 오히려 이성을 선택하는 방법은 자신이 거절당하지 않을 정도의 수준에 맞춰 성공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결정된다는 것이 더 설득력 있지 않을까.마지막으로 등장하는 니체는 불행한 인생을 살다간 불운의 철학자로 자신이 주장한 대로 고통을 통해서 위대한 철학자가 되었다. 니체는 인간을 초인으로 만드는데 방해되는 두 가지를 종교, 특히 기독교와 알코올로 보았는데, 기독교는 역경을 통해 성취를 얻고 보다 높은 존재로 나아가려는 인간 의지를 꺾는 나약한 자들의 변명에 불과하다고 봤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고, 원수를 사랑하고, 낮은데 임하라는 얘기는 그 역경을 통해 위대한 존재로 나아가지 못하는 나약한 자들의 위선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모든 위대한 존재, 즉 초인이 되기 위해서는 고통과 역경을 이겨내야 하고, 그래서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모든 고난은 어쩌면 축복일지도 모른다는 말이다.그런데, 사실 니체가 자신의 철학 그대로를 생활에서 실천한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고난을 통해서 정신적 초인으로 거듭난지는 모르겠지만, 사랑에 있어서도 사회적 성취에 있어서도 그가 살아생전에는 별로 성공한 모습을 보이지 못했으니까.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고통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게 상책 아닐까. 우리 인간의 모든 행위는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얻는 행위로 집약된다. 어쩔 수 없는 순간의 정신무장으로 고통에 담대해질 것을 말하는 것이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나는 고통에 반대한다. 의학이나 약의 조력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방법이겠다. 고통을 일부러 겪는 것처럼 멍청한 일은 없다고 본다.[머릿말에 끄적였다가 군더더기가 많아 뒤로 붙이는 글]소크라테스와 세네카, 에피쿠로스, 몽테뉴, 쇼펜하우어와 니체에 이르기까지 알랭 드 보통이 불러내는 철학자들이다. 소크라테스는 너무도 유명하고, 니체는 단행본으로 읽었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신은 죽었다는 초인의 외침 정도다. 에피쿠로스와 쇼펜하우어는 이름만 들어봤던 정도이고, 세네카는 이름조차 생소하다. 몽테뉴는 글이 좋다는 얘기를 과거 들은 적이 있어 수상록을 읽으려고 벌써부터 사두었다가 책의 두께에 놀라 몇 년째 손을 못 대고 있다. 사실 처음 십여 장 읽었으나 기억나는 게 거의 없다.내가 좋아할 만한 이야기에다가 철학적 잠언을 군데군데 넣어서 맵시 있는 문장과 적확한 단어를 사용하여 글을 쓰는 알랭 드 보통이 철학을 이야기한다고 하니, 이 기회에 눈높이에 맞는 그의 해설을 읽어볼 기회라 생각하여 기쁘게 책을 집어 들었다. 책이 너무 쉬우면 흥미가 없어지고, 너무 어려우면 졸음이 쏟아진다. 자극을 주고 도전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책은 약간은 어렵다 느껴져서 읽기 전 긴장감을 주고, 읽으면서 흥분을 느끼며, 읽고 나서는 성취감을 가져다주는 책인데, 나에게는 알랭 드 보통의 책이 이 모든 것을 가장 안성 맞춤한 책이라 하겠다.이 책 <철학의 위안>도 그랬다. 인생의 책이라 할 정도는 아니지만, 누구에게나 기꺼이 추천하고 서로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그런 책이다. 책에서 읽은 철학자들이 설파하는 주장의 요지를 일부분만 간략히 살펴보고, 내가 그 시대에 철학자 밑에서 수학했다면, 제기해볼법한 의문점과 약간은 반대되는 의견을 써보려고 한다. 물론, 아주 좁은 식견의 편협한 관점일 수도 있지만, 책을 읽으면서 이런 의견도 있습니다. 철학자 선생님 하고 문뜩 여쭙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정리해 두면 나중에 읽어도 내가 가진 관점을 복기하는데 참고가 될 듯하다.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젊은 철학자, 알랭 드 보통!
그가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들의 말을 빌려 영혼을 위로하다

인류 역사상 가장 비범한 철학자 6명, 즉 소크라테스, 에피쿠로스, 세네카, 몽테뉴, 쇼펜하우어, 니체의 생애와 생각을 정리하여 자신의 인생론을 펼쳤다. 드 보통은 이 철학자들을 통해서 철학의 본질과 목적이 무엇인가를 묻고 그 대답을 찾고자 했다. 그 답은 불안한 존재들인 우리가 행복으로 가는 길을 철학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용기, 우정, 순명(順命), 사랑, 고통의 승화 등에 대해서 이야기한 철학자들의 지혜를 우리의 일상에 적용하고 나아가 행복과 위안을 구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I 인기 없는 존재들을 위하여

II 가난한 존재들을 위하여

III 좌절한 존재들을 위하여

IV 부적절한 존재들을 위하여

V 상심한 존재들을 위하여

VI 어려움에 처한 존재들을 위하여

서명 목록
알랭 드 보통이 이야기하는 행복의 철학
인명 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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